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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전성자-카페 Re_봄(서부도서관)[2022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기 공모 장려상]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22-12-16 14:02:15 | 조회수 : 195

행복한 노년

 


길가의 은행잎이 노오랗게 물들어 가는 작년 10, 친하게 지내는 친구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바로 서부시니어클럽으로 전화를 해보라는 거였습니다. 담당하시는 팀장님과 통화를 끝내고 난생처음 보건증이라는 것을 만들고 서류를 갖추어 접수해서 심사 후, 젊은이들만 하는 줄 알았던 바리스타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평생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들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아온 내가 바리스타라니 대박!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습니까?

유니폼과 모자를 받아오면서 인생은 60부터라는데 나의 제2의 황금기가 찬란하게 빛날 것 같았습니다.

남편한테 뽐냅니다. 친구들한테도 사방 전화를 해서 자랑을 합니다.

 

11월 드디어 첫 출근을 합니다. 남편한테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합니다. 평생 인사만 했던 내가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니 행복하고 힘이 절로 나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도보로 20, 운동하기 딱 좋은 거리입니다. 설렘과 기대로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만추에 접어들면서 파란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새파랗게 보이고 길가의 코스모스 꽃 색깔도 이슬을 머금고 영롱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등교하는 초등생에게 안녕!’ 하고 인사하니 안녕하세요?’ 밝게 웃으며 답해줍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모두 저의 행복한 출근모습을 부러워하며 나만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나의 첫 직장은 서부도서관카페 리봄

매니저님과 선배 두 분한테 깍듯이 잘 부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인사를 하고 실제 근무에 들어갑니다. 기대도 되고 떨리기도 합니다.

 

첫 날은 머신기 앞에서 커피를 내리고, 이튿날은 음료도 만들어보고, 그리고 사흘째는 포스기 앞에서 계산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난생 처음 하는 일이라 금방 배워도 머리가 멍하니 저장이 잘 안됩니다.

선배들한테 하소연했더니 우리 나이가 아이를 업고 아이를 찾는 나이라고 웃으며 위로를 해줍니다.

 

하지만 흠잡히기 싫어서 레시피를 외우고 또 외우고, 메모도 해가며 안간힘을 다해 머릿속에 입력하려 애씁니다.

학교에 다닐 때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우등생은 따논 당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ㅎㅎ

어느 정도 입력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던 레시피도 막상 손님을 마주하고 주문을 받으면 뭣부터 해야할지 갑자기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한 번은 손님이 캬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했는데, 시럽을 넣고 레또를 넣고 우유 스팀을 하고 하트도 예쁘게 만들어서

맛있게 드세요!’ 인사를 하면서 드렸습니다.

손님이 커피를 들고 나가신 잠시 후 아차! 토핑을 하지 않았습니다. 얼른 카페를 나가보니 이층 휴게실로 향하시는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쫓아가 마악 커피를 입술에 대시는 손님에게 죄송합니다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커피를 되받아 토핑을 한 후 다시 갖다드렸습니다. 손님은 웃으면서 실수를 받아주었습니다.

 

나가실 땐 일부러 카페에 들러서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까지 해 주셨습니다. 실수를 했지만 뿌듯하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긴장은 되어도 코 끝에 스며드는 향긋한 커피향을 맡으면서 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가끔 손님들도 부러운듯 어떻게 하면 카페에서 일할 수 있느냐고 물어오기도 합니다.

 

이왕 일할거면 커피를 제대로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저녁시간을 내어 커피바리스타학원을 다녔습니다.

시험 보는 날, 남편이 찹쌀떡도 사주고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석 달 만에 바리스타 2급자격증을 손에 쥐었습니다. 아이들도 우리 엄마 대단하다고 추켜세워 주었습니다.

두 아이가 모두 결혼해서 떠난 후 곁이 허전하고 일상도 무료했는데, 좋은 바리스타가 되고 싶은 새로운 목표가 생긴 후로는 삶에 활력도 생기고 자존감도 쑥쑥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주말이면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옵니다. 재잘재잘 떠들며 들어오는 소리가 나면 절로 흐뭇하고 귀여운 우리 손주생각도 납니다.

책을 빌리고 나면 젤리나 음료를 주문해서 먹으며 부모와 함께 책도 봅니다. 너무 사랑스럽고 이쁩니다.

 

우리 도서관 옆에는 공공테니스장이 있습니다. 덕분에 주말이면 단체주문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아이스커피 10, 5, 이렇게요.

커피를 내리고 얼음을 담고 물을 붓고 신이 납니다. 왜냐고요? 우리 카페 매출이 쑥쑥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카페에 다니고 부터는 다른 커피샵에 가끔 들러도 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커피향과 맛이 우리 카페와 어떻게 다른지, 토핑은 어떻게 하는지 실내장식은 어떤지 유심히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이런 게 직업병이라는 걸까요?

 

지금은 처음의 서툴렀던 기억들도 추억으로 바뀌고, 동료들과도 직장동료 이상의 벗이 되어 좋은 만남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월 일정표가 나오면 달력에 근무일자를 동그라미도 그리면서 출근하는 날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니어카페 팀장님과 매니저님, 선배동료님들의 그 동안의

따뜻한 배려와 가르침을 감사하게 되새겨봅니다.

 

코로나가 하루 속히 완전 퇴치되고 마스크도 벗고 손님을 맞이하는 그 날이 빨리 오면 더욱 좋겠습니다.

인생 황혼기에 다시 한 번 삶의 활력과 노년의 행복을 알게 해준 시니어클럽 서부도서관 카페 리봄

아자~ 아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