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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공모전

임종빈-실버방범대 [2022년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 수기 공모 우수상]
이  름 : 관리자
시  간 : 2022-12-13 16:28:43 | 조회수 : 308

시니어 클럽과 은행나무

 

가을 은행나무 아래 모이는 우리 시니어들

 

우리는 중앙고등학교 옆 하대동 중앙공원에서 1시에 모인다. 5분 전에 도착하는 나를 빼고 회원 대부분이 1230분이면 다 모인다. 왜 이렇게 일찍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집에 있는 것 보다 나오는 게 좋다고 한다. “집보다 더 좋은 일터를 가졌으니 우리보다 행복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 클럽은 노인들이다. 노인을 그대로 풀이하면 늙은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치 스스로가 퇴물이 된 듯하여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노인 일자리 보다. “시니어 클럽”(senior club)이라 부르니 청량감이 들고 모던한 느낌이 든다. 시니어라는 단어는 영어 senior에서 온 말로 지위나 계급 또는 나이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로터리 클럽이나 라이언스 클럽이나 골프 클럽 같은 느낌이 들어 존중받거나 소중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늙었다는 이미지가 살아지고 젊고 활력 있는 새로운 느낌을 든다. 스스로 자신을 존경하면 다른 사람도 그대를 존경할 것이다 공자의 말이다. 시니어 클럽을 다니면서 노인의 탈을 벗고 스스로 존중받는 삶의 길이 열린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하다.

 

하대동 중앙공원은 중앙고등학교 옆길로 들어서면, ᄃ자로 늘어선 은행나무 울타리가 첫눈에 들어온다. 은행나무 66그루가 황금 촛대같이 가을을 밝히고 있다. , 나는 기도한다. 나의 노년이 저 은행나무처럼 그렇게 우리가 모두가 아름다운 노년이 되기를…….

 

은행나무는 장수하며 손자 대에나 빛을 본다 하여[공손수], 은행알이 사람의 눈동자와 비슷하여[영안][백안] 등으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은행나무가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생대인 35천만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역사 나무다.

나는 저 공손수(은행나무)처럼 장수하여 내 손자의 빛을, 그리고 이 나라의 통일을 보고 싶다. 비록 내 가난하여 은퇴 후의 노인 일자리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할지라도, 영안, 백안(은행나무)이 되어 천년 진주 역사의 눈이 되고 싶다. 그래서 다윈은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렀다. 은행나무 아래 모인 이 작은 모임이 진주 역사의 화석이 될 수는 없을까? 우리 시니어가 드리는 가을의 기도이기도 하다.

걸으면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우리 중 대다수가 무릎이나 허리가 좋지 않다. 우리 중에 뇌출혈로 쓰러졌다가 회생한 분이 세 분이나 된다. 그중에 한 분은 아직도 왼쪽 다리를 조금 전다. 이런 연고로 걷는 일을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걷는 게 일이고 삶이라고 말한다. 노인이 걷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나이가 들수록, 아플수록, 우울하고 힘들수록 걸어야 한다. 그의 이런 주장 덕분에 우리는 모두 열심히 걷는다. 우리는 하루 약 4-5천 보 사이를 걷는다. 우리는 걷는 게 일이고 걸어서 건강해지고, 걸어서 행복한 사람이다. 시니어 클럽은 걷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건강해지고, 행복한 사람이 된다.

 

우리가 모이면 온도측정을 하고 출근부에 사인하고, 공지사항을 전달받는다. 그리고 잠시 휴식하면서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침묵으로 빠져든다. 그만큼 우리 노인네 삶이란 단순한 반복이 되풀이되는 삶이기에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걸으면 달라진다. 꽃집 앞을 지나면 꽃 이야기로, 성당 앞을 지나면 신앙 이야기로 호떡 집 앞을 지나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 때가 시작된다. 우리 중에 젊을 때 선장을 한 분이 있다. 그는 횟집 앞을 지나면 어떤 고기가 맛이 있고, 어느 때 이 고기는 제철이고 그리고 그가 바다에서 겪은 무용담은 끝날 줄 모른다. 또 한 분은 단위농협에서 상무로 지냈던 분이다. 이분은 과일가게만 지나면 옛날 수매하던 시절의 젊은 날을 회상한다. 이렇게 함께 걸으면 이야기꽃이 핀다.

 

걸으면 힐링이 되고 건강하게 된다.

 

지난 주간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온 국민이 아파하고 있다.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갇힌 군중 속의 고통이 오죽했을까? 갇히면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걷지 않는다면 혈액은 정체되기 때문이다. 앉은 자세로 비행기를 오래 타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으로 혈전이 생겨 죽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걷지 않으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처럼 혈액 순환이 잘되지 않는다. 고로 사고가 정체되고 말이 없어진다. 걸으면 혈액이 좋아지고 상상력이 일어나고 대화가 충만해서 마음의 평화가 그리고 힐링이 일어난다.

 

추석이 지난 다음 우리 클럽은 다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늘 함께 걷던 회원이 우울해 보였다. 그래서 슬쩍이 물어보았다. 추석에 자녀들이 모두 다녀갔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속내를 털어놓았다. 아들은 왔지만 며느리가 오지 않았단다. 둘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할 것 같다고 한다.

아무 말 없이 그의 옆에서 함께 걸었다. 한참 후 그는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마음의 평정을 얻었다. 걷기는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하루 30분 정도 꾸준한 운동 걷기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걷기는 온몸의 근육과 관절을 빌림으로 척추 건강에도 좋으며, 체중 관리로 몸의 다리맵시를 유지해 준다. 27만원의 일당과 이 보다 훨씬 큰 수당인 걷기를 선물로 준 시니어에게 감사한다.

 

걸으며 동네 한 바퀴

 

우리의 집합장소인 하대 중앙공원의 정자를 한 회원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자의 주변의 낙엽도 쓸고 휴지도 줍니다. 길 가다 버려진 빈 상자를 주어서 상자를 모으는 사람에게 건네주기도 하고, 때로는 힘들어하면 밀어주는 일도 이제 하나의 일과처럼 되었다. 방과 후 어린이들이 하굣길이나 학원이나 태권도 도장에 운동을 하러 가는 길에서 만나면 인사도 나눈다. 처음에는 어린이들이 우리에게 인사를 했는데, 이젠 우리가 먼저 어린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파이팅 하면 밝게 웃는다.

 

KBS 1TV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동네 한 바퀴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가장 아름다운 드라마의 무대인 [동네]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쁜 [작은 것들의 보물찾기가 목표다. 나는 우리 시니어 클럽도 이런 마음으로 동네를 살피고, 지키고, 아름다운 보석을 찾아내어 새로운 하대동을 만들고 싶다.

하대동은 유난히 식당이 많다. 그러나 고만고만하거나 그만그만한 식당가다. 우리는 그동안 걸으면서 보아 두었던 맛집에서 회식한다. 함께하는 식사는 우리를 끈끈한 관계를 만들어 주었다.

다음 달부터는 우리 동네 하대동의 맛집을 보석같은 이들을 찾아 web에 올릴까 생각한다. 우리문화, 우리 진주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정식으로 발족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인간은 일생 동안 두 개의 발자국을 남긴다고 한다. 하나는 길 위에 남기는 발자국이고, 또 하나는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다. 우리 시니어 클럽 회원들은 하대동 일대에 발자국을 남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있는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우리가 남긴 탄소발자국은 저 은행나무가 간직하는고 억년의 삶을 살 것이다. 우리를 바바보고 서 있는 저 은행나무는 우리 발자국의 증인이다. 우리 시니어 클럽 역시 우리의 발자국을 가을은행나무처럼 황금길을 만들자.